[민경/현아] 그녀를 조심하세요 1 Fan fiction


아주 우연이었다. 그녀와 그녀가 만나게 된 건. 현아는 단지 방송국내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언니가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따라오게 되었을 뿐이고, 민경은 고등학교때 동창이 오랜만에 식사나 하자고해서 나왔을 뿐이라고 했다. 자리에 앉아 처음 느낀건 놀라움이었고 그 뒤로 시간이 갈수록 둘 사이를 메워가는 건 어색함이었다. 서로를 마주쳤던 건 대부분이 스크린이었을 뿐이고, 같은 음악 방송에 출연한다고해도 대기실도 다르고 심지어 무대에서 내려올 때조차 마주쳐도 간단한 목례를 하고 스쳐지나갔던 사이였기에.

 

 

 

 

“서로 인사 안해도 잘 알지?”

 

 

 

 

 

 

 

둘 모두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민경은 점점 더 여유를 되찾는 반면에 현아는 아직까지도 누가 말걸어주지 않으면 애꿎은 물잔만 흔들었다. 다행히 민경과 언니는 웃는 낯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가끔씩 어색한 시선으로 바라본 민경은 이상할 정도로 빛나보였다. 멤버들과 숙소에서 음악 채널을 보다가도 정말 이쁘다고 칭찬했던 것들이 무색할만큼 실물은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래서인지 저도 모르게 멍하게 그녀를 쳐다봤던걸까. 느끼지 못하면 둔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바라보는 시선에 민경이 대화를 멈추고 시선을 현아와 마주했다. 싱긋 웃는 얼굴에 정신을 차린 현아는 그제서야 황급히 고개를 창 밖으로 돌렸지만 얼굴은 이미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현아씨가 얘랑 친할 줄은 몰랐는데.”

“아, 예. 그… 언니가 착하니깐….”

“얘, 무슨 현아씨야. 그냥 편하게 현아라 불러. 그래도 되지, 현아야?”

“으, 응.”

 

 

 

 

 

 

그래도 돼? 눈이 호선을 그리면서 웃는데, 정말 거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웃음에 애써 환하게 웃는걸로 대답해줬다. 정말 저렇게 웃는 얼굴은 무적이라고 생각하면서. 호칭이 달라지자 둘만 이어나가던 대화는 셋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민경은 오빠 둘인 집안이라 귀여운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며 현아가 스스로 민망해질만큼 칭찬을 했다. 누구나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처음엔 어려웠지만 식사가 다 끝날 때즈음엔 자연스럽게 호칭이 언니로 바뀌었다.

 

 

 

 

 

 

나중에야 알게된거지만 이 자리는 민경이 그렇게 현아가 예쁘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해서 만든 자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도중에 뻘쭘하게 허허 웃는 민경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대화한건 이번이 두번째라고 했는데 전혀 기억을 못하는 현아의 표정덕에 울상이 된 민경 몇주전에 인가 무대 대기실에서 한번 대화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제서야 땀이 많은 탓에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가다가 벽에 기대어 있었을 때, 지나가던 민경이 시원한 음료를 줬던게 기억났다. 얼마나 정신 없었는지 아마 민경이 말하지 않았으면 기억 못했을터였다.

 

 

 

 

 

 

 

"사실 너랑 쟤가 친하다는거 듣고, 좀 징징대면 알아서 이런 자리 해줄거라고 생각했지."

"헐... 뭐야 우정보다 현아가 우선이야?"

 

 

 

 

당연하다는 듯 끄덕이는 그녀덕분에 빵 터져버렸다.

 

 

"근데 저 왜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어요? 혹시 내 팬?"

 

"음... 그것도 그렇고, 우선 귀여우니까?"

 

 

그렇게 말하는 민경의 미소가 알게 모르게 진득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오늘이 첫만남이니 그럴리 없다면서 착각으로 치부해버렸다.

 

 

 

 

 

 

 

 

 

 

 

 

 

 

인적이 드문 거리였는데 어떻게 알아본건지 계산 하는 중에 몰린 사람들탓에 민경과 현아는 도망치듯 나가야했다. 식당 밖까지 따라오려는 사람들덕분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에 세워둔 민경의 차로 피신한 뒤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행히 썬팅되있고 슬슬 땅거미가 지고 있는 시간이라 바로 앞을 지나가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둘만 있으니 아직까지 벗어내지 못한 어색함 때문에 잠시동안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식사 도중에 잡담을 나누느라 확인하지 못한 폰에는 언제 보낸건지 얼른 들어오라는 지현의 문자가 세통이나 와있었다. 어린애들은 밤늦게 다니면 안된다며 제멋대로 소현과 현아에게 11시 통금을 걸어놓은 지현에게 한번 잔소리를 들으면 기본이 1박 2일이라 키패드에 불이 나도록 빠르게 답문을 보냈다. 다행히 오늘 같이 온 언니는 지현과도 친분이 있고, 멤버들 모두와 친한 사람이어서 간단하게 사람 조심하고 일찍 들어오라는 답장만 왔다.

 

 

 

 

“잘 챙겨주나봐?”

“네?”

“멤버들이.”

“아… 뭐. 음, 자꾸 어린애 취급해요….”

 

 

 

어린애 맞긴 맞잖아? 라며 낮게 웃는 말에 민경을 곱게 흘겨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민경은 장난끼가 많았다. 간혹 가다 무대 뒤에서 봤을 땐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대충 선배 가수다운 위엄같은게 있었는데. 만난지 하루만에 민경에 대해 느낀 건 꼭 저보다 어린 남자애를 대하는 것 같았다. 무뚝뚝한 타입이어서 대화가 안되는 것보다야 차라리 이런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민경의 불쑥 손을 내밀었다. 움찔하면서 내려다 본 손에는 핸드폰이 올려져있었다. 의뭉스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뭐야, 오늘 만났는데 번호도 안줘?, 라며 입술을 댓발 내밀고 툴툴거린다.

 

 

 

 

 

 

이거 비싼 번호에요, 어디가서 남발하면 사망! 초딩같다며 놀려대는 민경이 이름에 초딩현아라고 저장해서 그걸 고치는데 한참이나 유치하게 실랑이를 벌였다. 어렵사리 계산을 끝내고 온 언니가 오고나서야 유치한 대치가 끝났다. 셋을 태운 차는 부드럽게 골목을 빠져나와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



빛이 따가웠다. 생생하게 남아있는 시각외엔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끙끙거리다가 포기하고 몸에 힘을 풀었다. 한참동안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이상할 정도로 숙소가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하네, 이렇게 조용할 사람들이 아닌데. 잠시 든 의문은 곧 온 몸을 덮쳐오는 몽롱함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천장의 타일이 다시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꿈을 꾸곤 했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항상 잠에서 깨고 난 뒤에도 한참동안 현실과 가상의 모호한 경계속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많았다. 그것이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로 달콤한 꿈이었다면 더더욱. 그건 행복이자 불행이었다. 꿈에서 깨면 달콤했던 시간속에서 다시 삭막한 현실로 되돌아와버리니깐. 현아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스스로가 웃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달콤한.

 

 

 

현아야, 우린 항상 같이 있자.

 

 

 

잡힐 리 없는 걸 알면서도 손을 뻗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마치 그 온기가 과거의 것과 닮아 있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지독히도 그리운 그 음성. 지금은 들을 수 없는, 들어서도 안되는 잔인한 목소리에 절망했다. 그녀는 항상 웃음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웃는게 더 이쁘다고 했지만, 현아는 자신이 웃는 것과 그녀가 웃는 건 비교할 수 없다고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현아에게 있어서 세상 전부였고, 없어지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무너졌다.

 

 

 

미안해.

 

 

 

 

 

 

그녀가 울고 있었다. 이젠 언제인지도 생각나지도 않는 과거의 장면이 분명했다. 스스로가 지우려고 애써 노력하고, 자기최면을 걸었던 그 긴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지는 과거의 잔상들이 피부속을 꿰뚫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눈물이 났다. 상처받은건 자기인데 오히려 저보다 더 슬퍼보이게 축 쳐진 눈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렇고. 아마 그녀는 자신이 원망하고, 평생토록 증오하길 바랬을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상냥하니깐. 하지만 그녀는 현아가 그럴 수 없다는 걸 몰랐다. 그녀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아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가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잔상이 그려낸 그녀가 현아에게 손을 뻗었다. 안타까운 그 눈빛,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그 눈빛으로 저에게 말을 걸었다.

 

 

 

 

사랑해.

 

 

 

 

 

 

“언니….”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진 빛줄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장 먼저 시각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감각이 제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현아는 대자로 뻗은 자세로 몇 번 큰 눈을 꿈뻑거리다 시트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이잉-

 

 

 

 

 

 

잠에서 깨어난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다. 달콤한 꿈에서 벗어나게 만든 원흉을 머리맡에서 집어 노려봤다. 잠금을 풀고 난 뒤에 확인해보니 문자에 부재중 전화까지 두통이나 와있었다. 맙소사. 시간을 확인하니 분명 눈의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면 오후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믿기지 않아 고개를 홱 돌려 바라본 알람 시계는 정확히 3시 5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뒤죽박죽 섞이다가 나온 결과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뭐야!”

 

 

 

 

 

그제서야 어제부터 오늘 다음곡 착수를 위해 작곡가와 파트 분배나 음을 맞추기로 하는 날이니 준비 제대로 해놓으라고 매니저가 엄포를 놨던게 떠올랐다. 갑자기 온 몸에 피가 싸늘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 시간까지 나만 빼놓고 어디가있는거야! 자신을 깨우지도 않고 사라져버린 멤버들에 대한 원망이 무럭무럭 피어나왔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일어난 일은 처음이라 억울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해서 얼굴이 금새 달아올랐다. 아까 꿈에서와는 다른 의미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빨리 씻고 옷이라도 갈아입고 있으려고 일어나려하는데 침대 위에 찢어진 연습장에 아기자기한 글씨로 써있는 글이 보였다. 꾸불꾸불한 악필이 딱 봐도 소현의 것이었다.

 

 

 

 

 

 

언니! 완전 식은땀 뻘뻘 흘리고 일어났는데도 이상한 말만해서 약 먹이구 언니 푹 쉬게 냅두고 우리끼리 다녀올게! 걱정말구 푹 쉬구 있어! 언니 얼른 나아ㅜㅜ 사랑해!

 

 

 

 

 

“내가 아팠다구?”

 

 

이상하게 왠지 잠에서 깼을 때부터 잠에서 덜 깬 듯 몽롱한 느낌이긴 했어도, 식은땀까지 뻘뻘 흘릴 정도로 아팠던건 아닌거 같은데. 악몽도 아니고 좋은 꿈이었는데. 씁쓸하게 웃으며 숨을 돌렸다. 주먹을 쥐려고하는데 힘이 안들어갔다. 원래 잔병치레를 자주하는 저질체력이긴 했어도 요즘 들어선 3시간만 자도 쌩쌩하기만 했는데, 아마 약발이 다 했나 싶나 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하나로 올려 묶었다. 그제서야 싸늘하게 굳어있던 온 몸에 긴장이 스르르 풀려갔다. 만약 오늘 일이 아파서가 아니었다면 꽤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불편한 짐으로 남아있을게 분명했다.

 

 

 

잔뜩 긴장되있던 온 몸으로 다시 안도가 밀려들자 몸에 힘이 쫙 빠져 다시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헛웃음이 나왔다. 불과 20분도 안된 꿈의 내용이 점차 희미하게 희석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떠올리려해도 조각조각 나뉜 기억조차 무서운 속도로 희미해져갔다. 단지 굉장히 행복하면서도 슬펐던 꿈이라는 것만 우는 심장이 말해주고 있었다.

 

 

 

 

아침 햇살도 아닌데 지나치게 밝은 햇살에 커튼을 쳤다. 메시지함을 열어보니 멤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안부를 묻는 문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가끔가다 미성년자인데 어째서인지 모르는 대출 문자들도 와있고. 평소라면 일일이 이모티콘까지 넣어가며 답장해 줬겠지만 이상하게 힘이 나질 않아 대충 확인만 하고 넘어갔다. 근데 밑에서부터 확인하다보니 마지막으로 와있는 문자는 불과 10분전에 온거였다. 민경에게서였다.

 

 

 

 

 

[현아야모해나심심해ㅜㅜ]

 

 

 

 

 

 

 

웃음이 새어나왔다. 확실히 민경은 저번주에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연락을 해왔다. 그게 성가시다거나 부담되는건 전혀 아니었지만, 이렇게 수시로 보내서 가끔씩 다른 일을 할 때나 잠을 잘 때 못받으면 민경에게 상당히 미안해졌다. 아마 방금 깨지 않았으면 민경은 30분 뒤에 또 문자를 했으리라. 그걸 또 못받으면 나중에 입을 댓발 내밀고 투덜투덜거리겠지. 꼭 어린애를 달래는 언니의 입장이 된 것 같아서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키만 큰 유딩이라니깐. 몸이 안좋아서 방금 일어났다고 문자를 보내니 흐트러진 시트를 정리하는 중에 바로 답장이 왔다.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 앞에서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던건가. 그나저나 이 언니는 스케줄도 없는건가, 바쁜 것 같았는데. 갸우뚱하며 문자를 열었다.

 

 

 

 

 

[어디아퍼!언니가찾아갈까?!]

 

 

 

 

 

 

 

자동 음성지원 된다는 말은 아마 이 언니를 위해 있는 말이겠지.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에 그 큰 눈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말하고 있을 모습이 상상되서 입꼬리가 슬쩍 늘어났다. 누구나 그렇듯 자신을 걱정해주는건 어떤 형태로든 기분 좋은 일임이 분명했다.

 

 

 

 

 

 

“밥이나 사달라고 할까… 심심한데.”

 

 

 

 

 

어느새 손가락은 키패드 위를 현란하게 춤추고 있었다.

 

 

 

 

 

 

 

 

-

 

 

 

 

 

“아니, 이제 괜찮다니깐~”

“시꺼. 얼굴은 꼭 시체마냥 허연 애가 뭐가 괜찮아. 얼른 앉으라니깐.”

“괜, 꺄악! 아파!”

 

 

날이 저물쯤 돼서야 돌아온 멤버들은 숙소로 들리지도 않고 바로 영등포에 있는 연습실로 이동했다. 원래는 현아의 건강을 생각해 현아는 오늘 연습에서 제외할 생각이었지만, 박박 우겨가며 따라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데려와야만 했다. 지현은 자기도 끼워달라며, 안무라도 미리 조금 맞춰야 속이 편할 것 같다며 찡찡거리는 현아 때문에 골이 터질 지경이었다. 사실 현아가 항상 활발하지만 건강은 가장 약한 아이어서, 오늘 같은 날에는 쉬어야만 하는데 더 완벽히 해야한다는 욕심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 우선 지현은 천성적으로 현아에게 약했다. 지금처럼 비 맞은 강아지마냥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볼때면 항상 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을 한숨을 내셨다.

 

 

 

 

괜히 심술이 나서 의자에 앉히고 어깨를 주무르자 꽥꽥 비명을 질러대는 현아를 샐쭉하게 쳐다봤다.

 

 

 

“아직 근육도 완전 뭉친 애가 뭔 연습이야.”

“힝… 할 수 있는데.”

 

 

 

 

 

 

 

아주 가끔씩 크리티컬 터지는 것마냥 리더로써의 자질이 뿜어져나오는 지현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연습실 구석의 쇼파에 앉아 지켜보기만 해야했다. 다음 곡으로 정해진 음악이 시작되자 제일 가까운 곳에서 현아를 보고 웃긴 춤을 추던 소현도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넷이 다들 춤삼매경에 빠지자 구경하는 것도 1, 2분이지 금새 심심해졌다. 평소라면 저 사이에서 물만난 물고기마냥 춤을 추고 있어야할 자신인데, 그저 뒤에서 구경하는 건 역시나 몸이 근질거려서 버틸 수가 없었다. 쇼파에 깊숙히 몸을 눕혔다.

 

 

 

 

 

 

그러다 문득 아까 저녁을 사달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했는데, 언제든지 말만 하라는 답장이 되돌아온 민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가는 도중에야 민경에게 문자가 아닌 육성으로 전화를 거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안그래도 컨디션이 안좋아서 목상태가 별론데. 크게 헛기침을 서너번 정도 하니까 통화음이 끊기고 다소 활발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헐, 목소리도 예뻐. 아주 잠시동안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현아!]

“우리는 무슨 우리에요~ 바빠요?”

[아니! 방금 스케줄 다 끊났지.]

“우와 지금까지 스케줄이 있어… 어딘데요?”

[나 대전에 있다가, 오늘 거기서 묵고 오려고 했는데 그냥 올라가는 중이야.]

“아...”

 

 

 

 

 

 

그래도 안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저녁 사달라는 말이 꺼려지긴 했다. 남자 선배 가수들이나 연기자들같은 경우에는 말하지 않아도 매번 배가 터질 만큼 사주긴 했는데. 일부러 날씨가 어떻느니, 무슨 스케줄을 하고 재밌었던 일 없었냐는 둥의 말을 이어갔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듣는 사람의 귀가 즐거워질 정도로 웃는 바람에 몇번이나 타박을 줘야했다. 혹시 술이라도 마신건 아닐까 생각했다.

 

 

 

 

 

[몸은 괜찮아?]

“네… 자고 일어나니까 다 나았어요.”

[그럼 다행인데. 약 잘 먹고 푹 쉬어야지. 안그래도 베베 마른 애가...]

 

 

자기가 말랐으면 언니는 도대체 뭐냐고 반문하려다 관뒀다. 이 언니는 진짜 자기가 예쁜 걸 모른다니깐. 통화를 하는데 노래 소리가 갑자기 커지는 바람에 민경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한쪽 귀를 막고 귀를 쫑긋 기울였다.

 

 

[근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설마 너 클럽같은데 간거?]

“무슨… 지금 저빼고 연습하는 거 구경중이에요. 심심해.”

 

 

 

 

 

 

노래가 점점 클라이막스로 갈수록 안무는 거세지고, 사운드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올라가서 어쩔 수 없이 연습실 밖으로 빠져나와야만 했다. 추위가 가신 것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젠 짧은 옷이 아니면 버티지도 못할 열대야로 변해버린 밤거리를 걸었다. 연습실 안은 에어컨이 빵빵했는데 나오니까 습기 있는 눅눅한 공기때문에 금새 숨이 텁텁하게 막힐 정도였다. 연습실 모퉁이를 돌아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등을 기대고 다시 폰을 귀에 붙였다. 다행히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여보세요?”

[응. 이제 좀 살 것 같네.]

 

 

 

민경은 하루종일 스케줄이었다고 했다. 매일 문자만 해서 백수인줄 알았다는 말에 한옥타브 올라간 소리로 깔깔 웃는 바람에 저도 따라 웃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청순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신기했다. 물론 이 웃음소리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자기만 알고 있다고해서 어디가서 말하지 못하지만.

 

 

 

 

 

 

 

 

 

[너 그럼 시간 있겠네?]

“시간이야 많져. 힝, 근데 할게 없어서 그렇지.”

[그럼 나랑 놀자.]

“놀고 있잖아요. 뭐야~”

 

 

 

 

 

갑자기 말이 없어 기다리고 있는데, 하도 폰에 집중하고 있어서 바로 뒤로 사람이 다가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갑자기 팔 한쪽을 붙잡아 이끄는 바람에 “꺅!”하고 소리지르며 휘청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올려다 본 곳에는 이제 익숙해지려고 하는 얼굴이 싱글벙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강이를 까려고 힘이 들어간 발을 조심스레 내렸다.

 

 

 

 

“시시하게 전화로 말고, 지금!”

“민, 민경 언니! 언제…”

 

 

 

 

 

 

 

나름 분장한답시고 선글라스를 썼지만 누가 봐도 강민경인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있으나마나한 선글라스를 한 손가락으로 쓱 내렸다.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보다 더 큰 사람을 올려다보는 기분은 별로였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런 느낌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쁜건 절대 아니고, 은근히 반가웠다. 민경은 생글생글 웃으며 한 손으로 현아의 머리를 헝크렸다.  

 

 

 

 

 

 

 

 

“음, 현아 보고 싶어서 영등포까지 달려왔지. 아, 다리 아퍼.”

“으휴… 뭐야. 예고좀 해요. 깜짝 놀랬잖아.”

“예고하고 오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지. 이런 표정도 못보고.”

“뭐, 뭐야 내가 언제 그런 표정 지었다고!”

 

 

 

투닥투닥 거리면서도 현아는 민경의 차를 타고 자연스럽게 연습실 골목을 빠져나왔다. 덕분에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져 거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남리다한테 1년 분량의 구박을 다 받은 건 그 후의 일.

 

 

 

 

 

 

-

 

 

 

멀리서도 눈에 띄는 키와 선글라스로 가려도 감춰지지 않은 외모때문에 첫만남처럼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피신 온 곳은 의외로 사람도 적고 분위기 있는 카페였다. 사실 민경은 저녁을 사줄 생각이었지만, 저녁을 사달라는 말 자체가 장난이었을 뿐더러 이미 저녁을 먹은 상태였기때문에 간단하게 입이나 즐겁게 해주자며 이리로 끌고 온 거였다. 다행히 카페 알바도 둘의 사인을 모두 받으니깐 잔뜩 상기된 얼굴로 뻣뻣하게 사라졌다.

 

 

 

 

 

"우와, 여기 분위기 짱 좋다."

 

 

 

 

사실 이런 카페에 올 기회가 많지 않은 현아에게 조금 낯설긴 했다. 현아도 꿈 많고 상상력 풍부한 십대 소녀인만큼 시간 날때마다 가끔씩 재미로 읽어주는 소설에서 보면 이런 카페에서 분위기 있게 책 읽으면서 커피 한잔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적이 많았다. 상상할 때마다 스스로 안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마끼아또와 카푸치노를 대신 시킨 민경은 답답해보였던 모자를 벗었다. 긴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스르르 흘러내렸다.

 

 

핫팬츠와 간단한 티만 입고 있는 현아와 달리 민경은 조금 더워보이는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목 언저리로 땀이 흐르는게 은은한 황색 불빛에 산산히 부서져보였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좀 더 예뻐보였다. 잠시동안이지만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느꼈는지 민경은 짗궂게 웃으며 목을 가렸다.

 

 

 

 

 

 

"어머, 어딜 자꾸 그렇게 보니. 부끄럽게."

"헐... 뭐야... "

"그렇게 뜨거운 눈빛은 사람들 없는데서 할래?"

"웃, 웃기셔..."

 

 

 

자기가 그렇게 뜨겁게 봤나. 스스로 민경의 능글한 페이스에 휘말리는 걸 모르는 현아는 무안해서 괜히 투덜거렸다. 어느새 서로의 앞에 놓인 카푸치노와 마끼아또가 놓여졌다. 그 뒤로도 대화가 이어졌지만 주로 말하는 건 민경쪽이었다. 평소라면 둘다 비등할 정도로 떠들었겠지만, 오늘은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현아를 배려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뚱하게 앉아있는 민경이 의아했다. 방금전까지만해도 조증걸린 사람마냥 웃으며 대화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뚱해진건지.

 

 

 

생각하다 모르겠어서 물으니 민경은 말없이 자기의 다리를 가르켰다. 다리? 다리에 뭐라도 붙었나. 다리라도 다쳤나싶어 내려다봐도 맨다리였다. 민경은 이제 조금 답답해진 표정으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왜요, 뭐, 뭐!"

"그렇게 짧은 거 입고 다니면 요새 큰일나."

"에?"

"그런 건 언니랑 다닐 때만 입으라구. 너무 이뻐서 질투나."

 

 

그 말을 하자마자 울상이었던 표정이 가면이었던 것처럼 금새 능글맞게 미소짓는 바람에, 실수로 컵을 엎질러버렸다. 그 뒤로 민경이 현아표 찡찡거림에 반시간 넘게 시달린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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